매리언 마이클 널은 미국 일리노이주 블랜딘스빌에서 태어났고 1903년 6월 넬 버니스 존슨과 시카고에서 결혼했다. 1903년 9월 의사인 아내와 함께 내한하여 미북장로교 선교지역을 중심으로 의료선교 사역을 감당했다.
제중원의 초대 원장인 존슨 선교사가 과로로 인해 1903년 미국으로 안식년을 떠났고 그 빈자리에 널 부부가 대신하여 의료선교를 감당했다.
당시 병원의 시설은 미비하여 작은 온돌방에 5명의 환자가 입원을 할 수 있었고 인원이 초과되면 인근 여인숙에 방을 얻도록 하여 환자들의 치료를 도왔다. 당시 널은 “나는 오전에는 어학 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예약한 환자들을 본다. 2시에 시작하여 7시까지 계속 본다. 이렇게 해도 많은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쉬거나 잠시 숨 돌릴 시간조차 없다. 업무는 과중하고 건강은 매우 좋지 않다.”라고 할 정도로 당시 한반도 남쪽으로는 부산의 이르기까지 광활한 지역에 서양인 의사는 널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가 내한한 첫해에만 외과 치료 환자가 1,500명의 이르렀다.
널은 아내와 함께 다섯 명의 한국인을 대동하여 경주로 가서 병자들을 치료하였고 다섯 명 중에 두 사람은 전도사로 온종일 전도와 설교에 힘썼고 남은 세 사람은 환자들을 제어하고 치료를 돕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처음에는 서민층 사람들만 모였으나 소문을 듣고 높은 신분의 사람들이 찾아왔고 마침내 경주의 행정수반이 널 일행을 관아로 초대했다.
널은 시간이 갈수록 지쳐만 가고 결국 탈진 상태에 이르는 건강의 악화로 1907년 청주 지역으로 전근을 갔다. 그는 청주에서도 시약소를 개설하여 의료선교사역을 이어갔다.
1907년 10월 7일 선교사를 사임하고 아내와 함께 귀국했고 1969년 10월 22일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카운티에서 97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매리언 널의 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