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일연이라 불렸던 릴리안 로스는 1900년 11월 30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시릴 로스와 어머니 수잔 섕크 로스는 미북장로교 선교사로 부산을 거쳐 선천과 강계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으로 파견된 선교사로서는 최초로 만주에서 전도 활동을 하며 부인성경반을 조직하기도 했고 의사인 모친은 선천에 서양 의술을 소개하고 많은 환자를 돌보며 복음 전파에 기여했다.
로스는 1917년 평양 외국인 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돌아가 1922년에는 파크대학, 1924년에는 휴론대학을 마치고 가정학으로 학사학위를 받았고 1926년 미국 장로회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과 성서를 연구하였다.
로스는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되어 1926년부터 1932년까지는 황해도 재령에서 8년간, 평북 강계에서 7년간, 1940년부터는 평양에서 2년간, 그리고 해방 후에는 대구·경북 지역에서 선교 사업에 헌신하였다.
1938년 일제 말엽, 극소수의 선교사들만 남아 있었는데, ‘기도문 사건’이 발생하였고 여기에 가담한 주모자 중에 한 명이 바로 로스였다. 이로 인해 출국 명령을 받아 필리핀으로 건너가 3년간 선교활동을 했다.
로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국이 해방되자 다시 내한하여 캠벌 선교사와 함께 대구지부에서 일하도록 임지가 배정되었다.
게르다 버그만 선교사가 설립한 성경학교 교사로 사역하며 농어촌교회 사경회를 인도했다. 그리고 1954년 경북고등성경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미국 교회들로부터 후원을 받아 고아원을 운영하고 전쟁미망인을 위해서 모자원을 경영했다.
1966년 미북장로교 파송 선교사 임기를 끝마치고 독립선교사로 동산기독병원에서 병원 전도인으로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간호사들과 직원들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예배를 인도했다. 존 시블리 선교사가 거제도에서 지역사회를 위한 의료보건 사역을 할 때 함께 그를 도왔다. 로스는 또한 한국교회 여전도회의 초기 설립되는데도 큰 공헌을 하였다.
그녀는 1983년 한국에서의 사역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가 요양원에서 지냈으며 1993년 93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동산기독병원 직원들과 릴리안 로스(1열 왼쪽 3번째)
병원 직원들과 무의촌 진료 활동을 나간 릴리안 로스
거제도에서 릴리안 로스(한복 입은 할머니)와 존 시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