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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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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엘라 탈메이지 프로보스트(Mariella Talmage Provost)

  • 생몰연도 : 1923. 2. 13∼2014. 4. 15.
  • 학력 : 퀸즈 대학교, 버지니아 의과대학
  • 출신 및 소속 : 미북장로교(NP)
  • 한국선교기간 : 1948.10∼1963.
  • 동산병원선교기간 : 1953∼1963.
  • 가족사항 : Raymond C. Provost(남편)
  • David Provost(장남)
  • Jonathan Provost(차남)
  • Elizabeth Anne Provost(장녀)
  • Janet Provost(차녀)
1. 선교사 가문에서 태어나다.

마리엘라 탈메이지 프로보스트의 조부는 중국 선교사로 40년간 사역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님도 조모와 함께 한국에 내한하여 45년간 선교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녀는 1923년 2월에 광주에서 7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평양외국인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1941년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주 샬럿에 있는 퀸즈 대학교의 5년제 간호학 과정을 등록했다. 2년은 대학 과정이고 3년 동안은 샬럿기독병원에서 실습을 했다.

1946년 2월에 간호학교를 졸업한 후 미북장로교 선교부에 등록했다. 1948년 10월에 내한했다. 한국을 떠났다가 25세에 비로소 돌아와 처음으로 사역한 곳은 전주예수병원이다. 본래 한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병원에서 일하면서 매일 한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많아 언어를 빨리 익힐 수 있었다. 전주예수병원은 2층 건물로 되어 있었고 아래층에는 무료 환자를 위한 입원실과 진료실이 있었고, 위층에는 유료 환자를 위한 입원실과 수술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병원은 매우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루의 고된 일을 끝내고 선교사 사택으로 돌아와 수돗물이 있고 집들은 크고 편안해서 때때로 한국인 이웃들보다 훨씬 더 편안한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고 하였다.

마리엘라는 6·25 전쟁 중에 한국 사람들의 어려움을 눈으로 목격하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많은 피난민이 전주로 내려왔고 많은 사람이 전쟁의 고통을 겪었고, 많은 어린이가 기아 상태로 거리에 버려졌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께서 이 어려운 한국 상황에 자신을 보내 주셔서 사용하심을 감사했다.

1950년 7월 5일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즉시 피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다.

젊은 시절의 마리엘라 프로보스트

2. 재내한 그리고 동산기독병원에서 사역하다.

1952년 5월 미국으로 돌아갔고 전주병원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미남장로교 선교사 레이먼드 프로보스트와 결혼하였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5년의 선교 기간을 정해서 선교사로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처음 대구에 도착했을 때 마리엘라 가족은 케네스 먼로 스콧 부부가 거주하는 집에서 같이 살았다. 그녀는 특히 학생들의 교육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기울였고 마침 당시 대구지역에는 많은 기독교 학교가 있었다. 그녀는 동산기독병원에 간호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학생 중에 고아원에서 온 여학생들에게 마리엘라는 남편과 함께 장학금 지급하였고 또한 졸업식을 할 때 간호교육 전 과정에서 최고의 성적을 받은 여학생에게는 특별상을 주었다. 그녀는 이 상을 수여하는 것을 기쁘고 자랑스러워하였다.

그녀는 아동병원에 고아가 된 아기들을 돌보아 주거나 고아원을 방문하여 봉사하는 일에 열심이었다. 자녀들과 함께 크리스마스에 많은 고아원을 방문해서 작은 선물을 나눠 주고 파티도 열어주었다. 또한 고아들을 위해 받은 기부 물품들을 잘 분류하여 지역 고아원 중에 가장 도움이 필요한 곳들에게 전달해 주었다.

동산간호학교 졸업식에서 마리엘라 프로보스트(2열 왼쪽 1번째), 1956. 3. 23

한국 고아원 아이들을 돌보는 마리엘라 프로보스트

3. 새로운 사역지와 하나님의 부르심

1963년 마리엘라는 자녀들과 함께 휴가차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로 돌아갔고 그 곳에 아담한 집을 지어 생활했다. 휴가를 마친 마리엘라와 레이먼드 부부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남편이 미국 맥키노시 스트레이츠 교회 목사로 사역을 하게 되어 남게 되었다.

마리엘라는 80세 되는 노년의 나이에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의 편지를 받고 말라위에 학교를 세우는 사역에 동참하였다.

2014년 4월 15일 마리엘라는 91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장례식은 노스캐롤라이나 블랙 마운틴 장로교회에서 2014년 4월 25일 금요일 오후 2시에 진행되었다.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교회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CTS기독교TV 창사 13주년 기념 초청 감사예배에 참석한 마리엘라 프로보스트(오른쪽 1번째). 2008. 1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