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동산의료선교복지회


선교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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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윗 로우(DeWitt S. Lowe)

  • 한국이름 : 로두의(盧斗義)
  • 생몰연도 : 1899. 7. 5∼미상.
  • 출신 및 소속 : 미북장로교(NP)
  • 한국선교기간 : 1929. 9. 28∼1941. 8. 6, 1946∼1956.
  • 동산병원선교기간 : 1946∼1948.
  • 가족사항 : Gladys Livingstone Lowe(아내)
1. 청주 소민병원 사역과 신사참배 반대로 강제 추방되다.

로두의라 불렸던 드윗 로우는 1929년 9월 28일 아내 글래디스와 함께 내한하여 곧바로 청주 소민병원의 원장으로 부임하였다. 로우 원장 재임 시절인 1930년대 후반 소민병원의 환자 수는 5,000명에서 8,000명으로 늘었고, 1936년 한 해 동안 병원을 통해 배포된 전도지만 5,500부에 달한다. 1937년 봄, 청주에 홍수가 나서 소민병원은 청주 사람들은 피난처가 되어 주었고 가난한 환자들을 무료 진료하여 청주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신사참배를 적극 반대했던 로우는 1941년 1월 일제가 각 가정에 가미다나 위패를 배부하자 디캠프 선교사와 함께 기독교인의 가정집을 돌면서 다시 그것을 전부 회수하였다. 이로 인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었고 1941년 4월 9일 대전지방법원의 판결에 “신사를 존경하지 않았다는 것”과 “신사 숭배에 방해하였다“는 혐의로 10개월의 징역과 노역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조선고등법원에서 다시 재판을 받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1941년 7월 22일 석방되었다. 이후 8월 6일 강제 추방을 당해 미국으로 돌아갔다.

2. 동산기독병원과 애락원에서 사역하다.

해방 이후 로우는 다시 내한하여 대구에 배치되었다.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안·이비인후과 2대 과정을 역임했다. 당시 병원의 수입은 총 336억 6천만원 정도였고 총지출은 331억 3천만원이었다. 당시 병원의 직원은 의사 14명, 인턴 7명, 졸업 간호사 22명, 학생 간호사 17명, 기타 고용인 72명을 합쳐서 모두 132명이 근무하였다.

병원의 모든 교직원은 매일 아침 병원 업무를 시작하기 전에 직원 혹은 외부에서 모셔온 강사님의 인도로 예배를 드렸다. 당시 로우와 로렌스 간호선교사가 예배를 다시 시작한 덕에 영적 공급과 힘을 얻는 교직원들은 모든 어려운 상황을 꿋꿋이 이겨내고 견딜 수 있었다.

1948년 로이 스미스 병원장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로우는 애락원 부원장을 역임했다. 당시 애락원에는 750명의 한센인이 수용되어 있었는데, 한센병 환자들의 치료에 다이아존이나 프로민의 기적적인 치료 결과를 듣고 시험적으로 애락원 환자들의 치료에 사용했지만, 이후 약품 공급이 너무 부족해서 한센병 환자 모두를 치료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로우는 1956년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하였다.

청주선교지부 선교사들과 함께한 로우 부부(왼쪽 1,2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