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무열이라 불렸던 에드워드 런던 캠벨은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워싱턴 대학교를 졸업했다. 아내 엘리자베스 엘렌 캠벨은 1913년 먼저 미북 장로교 파송 선교사로 내한했고 캠벨은 1914년 9월 18일 내한하였다.
그는 목공, 농장실습, 철공소, 목장경영, 양돈,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합리적 방법과 전문지식을 골고루 갖춘 산업선교사였다. 그는 평양 숭실학교에서 가난한 학생들을 교육하고 기술을 전수하여 학생 스스로 자립은 물론 학교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1915년에서 1916년까지 총 93명의 학생이 스스로 학비를 조달하여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왔다.
동산기독병원은 1930년 미북 장로교의 후원 기금으로 병원 건물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이때 건축에 대한 전문지식이 있는 캠벨이 대구에 내려와서 3개월간 머물면서 플레처 원장을 도와 병원의 세밀한 설계도면을 자세하게 보충하여 여러 문제점을 미리 방지하고 해결해 주었다.
병원 기초 공사를 위해 벽돌을 쌓아 올려 콘크리트 바닥을 했고, 콘크리트로 슬라브 평면 지붕을 했다. 또 철 창문틀을 제작하여 세웠고 전기시설도 갖추게 되었다.
캠벨은 1833년 모든 선교 임무를 마치고 미국으로 귀국하여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