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견인이라 불렸던 엘리자베스 베킨스는 미국 배틀크리크병원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11월 16일 미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했다. 동산기독병원의 네 번째 간호선교사로 왔다. 플레처 원장은 베킨스에 대하여 사려가 깊고 외향적이며 사교적인 여성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안심과 위로를 주는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특히 플레처 원장의 아내 제시가 첫 아이를 출산할 때 도움을 주어 순조롭게 분만하였다.
베킨스는 플레처 원장과 함께 애락원 사역을 감당하며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고 간호하는 일을 감당했다. 이와 함께 조선 여성들을 가르치는 일을 겸하여 담당했다.
이를 통해 단기간에 애락원 내 교회가 부흥하여 158명의 세례교인과 199명의 학습 교인, 4명의 장로와 8명의 집사가 세워졌다. 매주 중일학교에는 20개의 학급에 25명의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하였으며, 성경공부반은 매일 열렸다.
그녀는 1919년 딕과 결혼을 이유로 선교사를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