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델 맥기는 1911년 미북장로교 파송 간호선교사로 조선에 와서 황해도 재령선교지부에 배속되었다. 이후 대구선교지부에 간호사가 필요하여 동산기독병원에 크리스틴 카메론, 메리 맥켄지에 이어 세 번째 간호사로 부임했다.
그녀는 존슨에서 플레처로 교체될 때 간호사로 섬겼을 뿐만 아니라, 다른 선교지부에 있는 선교사들 가운데 환자가 발생하면 즉시 가서 환자를 돌보며 탁월한 실력의 간호선교사였다.
1914년 1월 11일 브루언 선교사가 쓴 선교 보고서에 “우리는 맥기 양을 붙잡아 둘 작정이고, 그녀는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최근에 그녀는 순회 지역에서 폴라드 양과 함께 여성성경공부반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곳 지도자가 제게 말하기를 둘 다 한국말에 유창하며, 맥기 양은 특히 발음도 좋다”라고 보고했다.
그녀는 대구선교지부의 여성과 어린이들의 주일학교 사역도 도왔다. 그런 그녀는 대구선교지부의 선교사들이 한결같이 붙잡아 두려고 했지만, 3년간 간호사로 봉사한 뒤 결혼을 이유로 사임하였다.
에델 맥기가 도운 대구의 여성성경공부반, 19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