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 로저스 플레처는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친절한 관심을 가지라고 가르쳤다. 당시 출석하던 교회에서 해외 봉사를 위해 자원하였는데, 그녀는 한국 선교사로 자원하였다.
1912년 제시는 미북장로교 선교본부가 한국 복음화의 요청을 따라 내한하였고 안동으로 임지를 지정받았다. 그리고 나중에 아치볼드 그레이 플레처 선교사를 만나 결혼해서 대구로 오게 되었다.
1930년 동산기독병원 영아보건소 보고서에 따르면 제시는 이영순 간호사를 도와 수잔 아담스 선교사와 함께 영아보건소를 위한 꾸준한 후원을 아끼지 않았고, 주요 업무를 도왔다.
영아보건소를 찾는 영아 어머니들에게 팜플렛과 전도지를 나누어 읽도록 했고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가 오면 전량 혹은 일부분의 우유를 무료로 나눠 주었다. 1939년 5월 대구 도립병원에서 세계 어린이 주간 축하 행사가 열렸는데, 최우수우량아 2명 중에 1명으로 뽑히어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 우량아대회에 참가하였다.
동산기독병원 영아보건소 1930. 1
1941년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격 이후에 제시와 플레처 선교사 부부는 꼼짝없이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고 영아보건소의 일은 이영순 간호사에게 모든 일을 맡겼다.
결국 1942년 6월 남편과 자녀들과 함께 부산에서 배를 타고 일본을 거쳐 여러 나라를 거쳐서 미국으로 귀국했다. 1946년 해방 이후에 남편과 함께 잠시 한국에 다시 돌아왔지만, 부부가 미국에서 휴가를 보내는 중에 6·25전쟁 발발로 인해 다시는 내한하지 못했다.
제시는 남편 플레처를 도와 평생 함께하며 선교사역을 감당하다가 1971년 87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노년의 플레처 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