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러시 캄튼은 미국 캘리포니아 카멜장로교회의 후원으로 선명회 파송 선교사로 딸과 함께 내한했다. 그녀는 동산기독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다. 당시 간호학교 교무과장이었던 이영자 교수는 캄튼은 아주 헌신적인 사람이었고 아동 병동에서 근무했으며 안동이나 외부 지역으로 의료선교 봉사활동을 다녔고 미국에서 구제 용품을 지원 받아서 병원과 고아원에 구제 활동을 펼쳤다고 했다.
그녀는 미국 선명회 소속 고아원 원아들의 보육 상태를 감독하는 보육 감독으로 근무했다. 때문에 구제 용품 관리를 철저히 했고 행여 누군가 물건을 훔쳐 갈려고 하면 아주 엄하게 대하며 엄격하게 관리하였다.
병원에 환자가 치료를 받고 집으로 돌아갈 경비가 없으면 그녀는 자신의 차에 태워서 환자의 농촌집까지 태워다 주곤 했다. 그만큼 그녀는 환자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헌신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