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희로 불렸던 진 버틀러 시블리는 1926년 3월 7일 켄터키주 루이빌에서 태어났다. 진이 선교에 관심을 가지도록 영향을 준 사람은 교회의 청년부 교사 자일스 부인과 진의 어머니였다. 진의 어머니는 장로교 선교부에서 16년 동안 위원으로 지내면서 교회청년부에 강사로 초대되어 선교사로서 헌신적인 삶을 살도록 청년들을 격려하였는데, 진도 어머니의 이러한 삶의 영향을 받아 선교사의 길을 준비하였다.
1948년 7월 2일 남편 시블리와 결혼하여 중·고등학교 영어 교사, 퇴근 후에는 시간제 교사로 일을 하면서 의대생, 인턴, 레지던트 시절, 경제적으로 영적으로 힘들어하는 남편을 잘 도왔다. 진은 남편 시블리의 가장 실력 있는 조력자이자 아내였다. 또한 집 근처 무디 신학교를 통해 두 부부는 선교사로서 사역에 필요한 영적 준비를 할 수 있었다.
1961년 남편과 함께 동산기독병원에 도착한 부부는 입원 환자 중 도시빈민지역과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경제 상태를 상담하고 입원비를 지원해 주는 일을 하였다. 또한 환자와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돕는 사역을 하였다.
진은 간호대학에서 영어강의를 하였는데, 화요 성경공부반에 참여하였던 학생들 중에 나중에 거제도 사역에 동참하였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그녀는 바쁜 업무 중에도 네 명의 자녀들을 교육에 힘썼고 자기 주도적 학습방식을 통해 엄격하게 스케줄을 잡아 교육하였다.
거제도에 도착한 진은 염소 사육장을 마련하여 환자에게 우유를 보급하고 치료비 부담으로 힘들어하는 가족에게 일감을 주었으며, 뜨개질 강좌를 열어서 여성들이 생활비에 보탬이 되게 하는 등 지역사회개발사업을 시도하였다.
또한 미래 지역사회 보건의료 인력 개발의 방편으로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장학사업지원과 장애 학생들도 세심한 배려를 받아 학업을 마치도록 도왔다. 거제도 주민들이 세운 공적기념비에 “부인 손진희 여사는 불우한 학생들 찾아 중고등학교에 진학케 한 수가 무려 수십명에 달했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동산기독병원 간호학교에서 강의하는 진 시블리
거제도 지역주민이 세운 시블리 부부의 공적기념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