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요한이라 불렸던 존 로슨 시블리는 1926년 10월 7일 미국 뉴저지주 메이플우드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모는 중국 내지 선교사로 참여하였다. 시블리의 부친은 미북장로교 파견 중국 내지선교사의 아들로서, 중국에서 태어나서 학창 시절을 보내다가 중국에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서 가족들과 함께 강제 출국당하여 미국으로 돌아왔다.
시블리의 부친은 콜롬비아 신학대학에 다녔고 마가렛 로손을 만나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고 미국장로교회 목사로 일생을 헌신하였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지대한 영향을 받아 시블리는 17세 나이였는데, 의료선교사가 되려고 계획하였고 대학생 때 만난 진 버틀러와 의기투합하여 기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의료 선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시블리는 1948년 진 버틀러와 결혼하였고 7월 2일 시카고 노스웨스턴 대학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웨슬리 기념 병원에서 인턴을 마치고 다트머스 히치콕 병원에서 병리과 수련, 일반외과 수련과 레지던트 과정을 수료했다.
시블리 부부는 미국 코네티컷주 그리니치에 있는 제1 장로교회와 뉴욕 알바니에 있는 제4 장로교회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1960년 2월 미연합장로교 파송 의료 선교사로 아내와 4명의 자녀와 함께 내한했다.
1961년 동산기독병원장 하워드 마펫 선교사님이 안식년을 맞아 부재 가운데 시블리가 원장 서리로 사역하며 병원에서 외과의사로서 업무를 담당하였다.
당시 한국 정부는 한센인 환자들에 대한 생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통보 해오므로 애락원이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하였다. 이에 시블리는 한국 정부와 협상을 통해 한센인들에 대한 식량과 연료에 대한 정기적인 정부 보조금이 계속 나오도록 협상을 하였고 이를 위해 한센인 병원 건축을 진행하여, 당시 국내 유일의 정형외과 수술관인 3층 현대식 콘크리트 건물을 건축하였고 1968년 명칭을 ‘대구애락보건병원’으로 변경하였다. 그는 애락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에 재건 수술을 실시하였다.
또한 시블리는 존 해밀턴 도슨 선교사와 공동으로 미국의 선진 외과 지식과 기술을 병원의 외과 의사들에게 전수하였다. 1960년 당시 한국의 경제성장이 아직 이른 상황이고 교회와 교인들은 기독병원을 도울 수 있는 경제적 수준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여러 미국 교회에서 보내온 선교헌금을 활용하여 의료사회복지사를 채용하여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는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이는 동산기독병원 사회사업실의 시초가 되었다.
존 시블리가 재임 당시 함께 한 외과 의료진
애락보건병원 기공식에서 존 시블리, 1961년
존 시블리가 재임 당시 함께 한 외과 의료진
애락보건병원 기공식에서 존 시블리, 1961년
1966년 안식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시블리는 어릴 적부터 생각한 이상, 즉 가난한 사람들 모두가 치료받을 수 있는 기독교 병원을 만들고자 하는 꿈을 구체적으로 현실화해 보기로 하였다.
한국의 무의촌 중 3개 면의 인구 3만 명을 대상으로 이사 보조 인력을 활용하여 종합적인 지역사회 보건 시스템을 개발하려는 ‘거제지역 사회 보건 시범사업’은 미국 장로교선교본부의 아시아 담당 뉴트 터버와 세계교회협의회 기독교 의료분과의 회장 짐 맥길버리가 의료 선교 기금이 이러한 시범사업에 사용되는 것을 타당히 여겼다.
당시 거제도는 인구 110,000명에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는 한 명뿐이었고 육지의 병원에 가려면 2시간 반 이상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지역 교회 지도자들이나 지역 사회 유지들은 시블리가 와서 지역 주민들의 건강 문제를 돌보아 주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시블리는 세계교회협의회 산하 의료 선교위원회의 의료선교 사업 후원금으로 경상남도 거제군에 ‘재단법인 거제지역사회개발 보건원“을 만들었고 1970년 12월 4일 ’거제건강원‘을 정식 개원하였다. 이 사업은 1차보건의료를 강조한 지역사회의학의 국제적인 프로젝트였기에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되었고 후일 본 파일럿 프로젝트는 미국장로교선교부와 세계교회협의회 기독교 의료분과에 보고되어 관련 산하 국가들에 1차 보건 프로젝트 기획을 할 때 기초 자료로 활용되었다. 1970년 개원한 거제건강원은 주민들에게 ’실전병원‘이라 불렀다.
1977년 6월 시블리 원장은 ‘재단법인 거제도 지역사회개발보건원’과 ‘실전병원’을 ‘사단법인 거제지역보건협회’ 산하 ‘거제보건원’에 기증하고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이는 이후 거제기독병원에서 의료법인 거붕백병원으로 발전되었다.
거제도 사역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강의하는 존 시블리
거제도 주변의 섬으로 진료를 나가는 존 시블리
1977년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2년 동안 석사학위과정을 마친 시블리는 1980년에는 태국의 피난민 캠프에서 보건사업을 하였고, 1981년에서 1982년까지 연세대학교 예방의학 교실에서 지역사회의학 담당 교수 및 보건사회부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또한 1983년부터 1986년까지 네팔 산악지대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였고 1986년에는 다트머스 의과대학에서 지역사회보건학 객원교수로 다트머스 히치콕 병원 심장내과 진료 의사로 근무하다가 1993년에 은퇴하였다.
시블리는 2012년 6월 24일 87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2013년 6월 5일 부인과 아들, 딸 유가족 6명이 유해를 가지고 한국을 방문하여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은혜정원에 유해 안장과 묘비를 세웠다.
그의 묘비에는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라고 새겨져 있다.
동산기독병원에서 존 시블리, 하워드 마펫, 윌리엄 맥콜
은혜 정원에 안치된 존 시블리의 묘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