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스 마펫이라 불렸던 마가렛 델 마펫은 1915년 11월 11일 몬태나주 포사이스에서 교육자이신 아버지와 간호사이신 어머니 사이에 셋째로 태어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휘튼대학의 설립자이고 초대총장인 조나단 블랜차드의 손녀로 미국에서도 유명한 명문 가문이었다.
델은 휘튼대학 재학 중에 하워드 마펫의 형 샘 마펫의 소개로 알게 되어 대학을 졸업하고 1941년 8월 2일 휘튼대학 교회에서 마펫과 결혼하였다.
델과 마펫 부부는 첫째 아들 하위와 둘째 찰스 블랜차드와 함께 1948년 중국에 난징에 있는 큰 기독교 병원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였다.
그러나, 난징에서 사역한 지 일 년이 조금 지난 뒤, 중국 공산당의 군대에 의해 포위되어 델의 가족은 상하이로 피신하였다가 다행히 한국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려서 배편으로 인천에 도착했다. 그리고 1948년 크리스마스 직전에 대구에 도착했다. 대구에 정착하여 제대로 자리도 잡기 전에 6·25전쟁이 발발하여 델과 자녀들은 일본 나고야에 있는 미국의 공군기지에서 1년간 살았고, 1951년 남편 마펫 선교사와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1957년 대구 동산기독병원으로 돌아왔다.
동산기독병원을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 엄청난 모금이 필요했다. 델은 모금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델은 팔이 아프도록 날마다 해외모금을 위한 편지를 쓰고 타이핑을 한 마펫 선교사의 영문 비서 서서원 선생의 도움을 받아 동산기독병원 영문 소식지인 “NEWS LETTER”를 만들어 발송했으며, 병원에 찾아오는 중요한 손님을 집에서 접견하는 뛰어나 비서업무를 수행했다. 델이 소식지를 보내어야 할 사람이 무려 3,000명이나 되었다.
델은 마펫 병원장에게 최고의 비서였다. 평소에도 남편 마펫은 아내 델이 탁월한 비서라고 자랑했다. “늘 꼼꼼하고 세심한 그녀는 사람들을 배려했고 특별히 내가 많은 일로 힘들었을 때 좀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도록 충고해 주었고 무엇보다 병원과 여러 일에 대해서 빠뜨림 없이 체크해 주었다.”
최고의 비서였던 델 마펫
델은 간호학교의 발전에 대하여 특별히 관심을 가졌다. 그녀는 간호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간호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가운데 믿음이 좋은 크리스천 가정에서 온 신실한 소녀들의 재정적 필요를 돕는 장학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이를 위해 미국의 후원자들에게 소개하여 일대일로 자매결연을 맺어 학생의 학비와 기숙사비를 후원하도록 했다.
그녀는 또한 건축과 조경 등에 대한 탁월한 지식으로 병원을 아름답게 가꾸었다. 나무나 꽃을 심을 일이 있으면 절대로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고 자신이 직접 꽃과 나무들을 선택했다. 그렇게 심어진 나무나 꽃은 정성으로 관리하였고 이를 통해 병원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조경으로 꾸며져서 많은 대구 사람들이 구경을 왔다.
동산기독병원 정원에서 마펫 부부와 한국 아이를 입양한 둘째 아들 찰리 부부
델과 마펫은 한국의 모든 사역을 끝내고 1993년 1월 15일 미국으로 귀국하여 델의 고향인 카펜테리아에 살았다. 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몇 주 전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서 산타 바바라 코타게병원에 입원했다. 그녀가 앓은 여러 가지 합병증은 결과적으로 주님이 그녀를 영원한 천국으로 부르시는 통로가 되었다. 2010년 1월 20일 향년 94세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2013년 9월 25일 델의 막내아들 샘과 외손자 이안 테일러가 유족을 대표하여 참석하고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관계자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남편과 함께 은혜정원에 안장되었다.
마펫 부부의 유해 안장식(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 내 은혜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