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연사라 불렸던 로렌스는 1894년 캐나다 매니토바주 위니펙시에서 태어났다. 1917년 7월 포모나밸리병원 간호학교를 졸업하고 적십자병원에 취직했다. 1918년 6월 육군병원에 배속되어 제1차 세계대전 말미에 프랑스에서 적십자사 간호사로 활동했다. 1920년 9월 13일 미북장로교의 파송을 받아 내한하여 세브란스 병원 간호부 양성소의 제2대 소장을 역임했다.
그녀는 이론과 임상 지식이 풍부하면서도 기독교 신앙과 직업정신이 투철한 간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교과과정을 개편하고 교수진을 확보하는 노력을 체계적으로 기울인 결과, 1924년 세브란스병원 간호부 양성소는 조선총독부의 지정을 받게 된다.
로렌스는 에스더 쉴즈와 함께 재선졸업간호부회와 조선간회부회 등의 조직과 창설에 기여했고, 국제간호협회의 일원이 되기를 희망했다.
1940년 일본이 선교사들에 대한 압력이 심해지면 결국 11월 16일 일본의 외국 선교사 강제 추방령에 의해 출국하였다.
초생아처치법에 대해 가르치는 에드나 로렌스
1947년 동산기독병원으로 다시 파견되어 내한한 그녀는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간호과장으로 근무하며 병원의 재건과 간호교육에 열정을 불태웠다.
그녀는 간호학교 간호감독으로 있을 때 전국에서 우수한 신입생들이 입학하였고 교육 수준이 높아 우수한 졸업생을 많이 배출하였다. 졸업생들은 전국 어느 병원에서나 환영을 받았고 교사와 선교사들의 임상 실무 교육과 영어교육이 매우 효과적이어서 해외 취업을 많이 하여 미국에서도 동산병원 간호학교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로렌스는 닥터 로우 선교사와 함께 병원의 예배를 재개하였고 병원의 모든 관계자는 매일 아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예배에 자발적으로 참석했고 심지어 모든 직원이 한꺼번에 다 들어가서 예배를 드릴 수 없을 정도였다.
1955년 로렌스는 전에 과로로 인해 눈이 안 좋았는데, 지병이 악화되어 다시 귀국길에 올랐고 1973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80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동산기독병원에서 간호사들과 에드나 로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