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린이라 불렸던 로렌 존스 라이언은 남편과 함께 1923년 미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했다. 당시 조선은 일제로부터 식민 지배를 당하고 있었고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일본의 방해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1940년 기독교 박해로 인해 강제적으로 출국하여 남미 칠레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하다가 해방 후 1948년 재내한 하였다.
1948년 마펫 원장의 동산기독병원 보고서에 따르면 세탁실과 병상 의복, 설비지급 등 자재 공급실의 감독 일을 감당했다. 또한 간호사를 양성하기 위하여 간호학교 교사로 피아노와 영어를 가르쳤다.
대구 젊은 여성 성경공부반 학생들과 함께한 로렌 라이언(5열 오른쪽 3번째)
6·25전쟁의 격전지였던 포항은 폐허가 되었고 전쟁고아와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로렌은 남편 라이언 선교사와 동산기독병원의 협력 및 미국의 유명한 피엔스의 특별한 원조, 일본 선교사회의 의료기구 기증 등으로 1953년 6월 5일 포항에 “미 해병기념 소아진료소”를 개원하였다.
고아들의 무료 진료, 임산부의 건강관리, 일반 소아과 환자의 실비 진료를 목적으로 일본인 가옥을 허락받아 설립된 진료소는 의사, 조산원, 전도사, 잡부 총 4명의 직원이 일했다.
1956년부터 1958년까지 3년간 동산기독병원으로부터 매월 당시 환화 6만환을 원조 받아 진료소를 유지했고 1960년 6월 완전 자립을 하여 선린의원 병원명으로 개원했다. 1999년 21개 진료과, 510병상으로 한동대학교 부속 선린병원이 되었다.
로렌은 1953년 5월 안식년을 맞아 귀국하였다.
동산기독병원이 지원한 미 해병기념 소아진료소, 1953. 6. 5